티스토리 뷰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다이즘에서부터 초현실주의가 발생하였기 때문입니다. 초현실주의(surréalisme)는 192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난 예술문화 운동입니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예술 운동은 전쟁으로 인한 문화적 충격과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났습니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의 깊이를 탐구하려는 문화적 운동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로 초현실적이고 이성의 굴레에서 벗어난 세계를 추구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정신분석 이론 중 특히 프로이트 개념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예술과 문학의 비합리적이고 몽환적이며 잠재의식을 포용하면서 창의적인 과정을 합리적 통제로부터 해방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운동의 기원은 반체제 입장과 아방가르드 실험으로 유명한 선구자인 다다이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전쟁의 공포와 사회의 비합리성에 환멸을 느낀 다다이스트들은 부조리와 혼돈 그리고 무작위성을 항의와 반란의 수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다다이즘이 발전함에 따라 그 구성원들은 잠재의식의 잠재력과 창의적 가능성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초현실주의 출현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것을 시대적 상황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다다이스트들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여러 가지 이유로 취리히에 처음으로 모였습니다. 전쟁 중에서도 중립노선을 지키던 스위스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유럽의 혼란을 피해 도망친 예술가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했습니다. 취리히의 활기 넘치는 문화적 현장은 전쟁의 파괴적인 영향에 환멸을 느끼고 전통적인 예술적 관습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또한 도시의 느슨한 검열법은 표현의 자유를 더 많이 허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다다이스트들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도전적인 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유럽 전역의 상황이 안정되자 많은 다다이스트들은 파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파리는 주요 문화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다다이즘의 발상지이기도 했습니다. 다다이즘의 사상과 영향력은 이미 아방가르드 집단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파리는 다다이스트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전파하고 동료 예술가와 지식인 그리고 일반 대중을 포함한 더 폭넓은 청중과 소통할 수 있는 더 큰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파리로 돌아온 다다이스트들은 예술적 규범에 더욱 도전하고 사회적 관습을 파괴하며 급진적인 예술적 실험과 혁신이라는 사명을 계속 추구했습니다. 취리히에서 파리로 돌아온 다다이스트들은 파리 다다를 구성 했습니다. 이들은 파리 다다보다는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됩니다. 그것은 이들이 현실을 뛰어넘은 무의식 세계와 초현실(surreal)을 중요한 주제와 표현방식으로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초현실주의는 자동 쓰기와 꿈 분석 그리고 자발적인 표현과 같은 기술을 사용하여 인간 정신의 신비를 탐구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초현실주의 작품은 종종 환상적인 이미지와 기괴한 병치를 보입니다. 전통적인 논리의 거부를 특징으로 하며 관객이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 경험의 복잡성을 탐구하도록 유도합니다. 초현실주의는 사회적 규범과 관습에 도전함으로써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인간 상태에 대한 더 깊은 진실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초현실주의 문학과 미술의 관계

초현실주의의 발전 흐름에서 문학계와 미술계는 서로 큰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였습니다.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에 기반을 두고 발생했습니다. 이런 영향 때문에 초현실주의에서도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현실주의의 대표 작가로 먼저 떠올리는 것은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 등의 미술가들입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의 출발은 미술이 아닌 문학계에서 시작됩니다. 실제로 비평가이자 초현실주의 운동의 수장이나 마찬가지였던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또한 시인이자 문학 작가였습니다.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운동의 주요 멤버로 대부분 문학가들을 꼽았습니다. 초현실주의의 주요 기법인 자동기술법도 사실 문학적 방법에 가깝습니다. 1924년 프랑스 작가이자 시인인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은 초현실주의 운동의 형성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초현실주의 선언(Surrealist Manifesto)을 출판했습니다. 브르통은 초현실주의를 무의식을 활용하고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예술과 사회를 변화시킬 혁명적인 힘으로 여겼습니다. 이 운동은 인간 정신의 깊이를 탐구하려는 공통된 관심으로 뭉친 다양한 작가와 예술가 그리고 지식인 그룹을 끌어 모았습니다. 초기 초현실주의는 실험 정신과 자발성을 특징으로 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호안 미로(Joan Miró)와 같은 예술가들은 의식적 통제를 우회하고 사고와 감정의 더 깊은 층에 접근하기 위해 자동화와 프로타주 그리고 콜라주와 같은 기술을 수용했습니다. 이 예술가들은 콜라주와 프로타주 그리고 데칼코마니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의식적으로 필터링하지 않고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초현실주의 작품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영향과 무의식에 대한 초현실주의적 매력을 반영하는 꿈같은 이미지와 기괴한 병치 그리고 상징적 모티브를 특징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현실주의는 발전하면서 다양한 분야와 접근법으로 발전했습니다. 일부 예술가들은 혁명적 운동으로서의 초현실주의에 대한 브르통의 원래 비전에 충실한 반면 다른 예술가들은 좀 더 개인적이고 특이한 길을 추구했습니다. 초현실주의 기법과 모티프는 예술가들이 전통적인 예술 활동의 경계를 확장하려고 노력함에 따라 영화와 사진 그리고 조각 등 다른 예술 매체에서도 표현되었습니다. 이렇게 미술 및 다양한 예술가들의 방식은 문학계가 정립한 초현실주의의 정의를 넘어서 점점 범위를 넓혀갔습니다. 미술가들 중에서도 초현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브르통과 의미와 가치를 함께 가는 주류들도 있었지만 의견을 달리 하는 독창적인 작가들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르네 마그르트와 조르주 바타유 등이 그 대표적인 미술 작가의 예시입니다. 그러나 그 시작과 대립이 어떻든 초현실주의 문학과 초현실주의 미술은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현대 미술철학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초현실주의가 사회문화 전반에 미치는 영향

초현실주의는 대담하고 급진적인 특징과 함께 사회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초현실주의의 영향력은 아주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현실주의가 사회와 문화에 미친 영향은 심오하고 광범위하여 예술과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와 철학 심지어 정치나 심리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정신분석 이론 그중에서도 특히 무의식에 대한 탐구에 영향을 받은 초현실주의는 인간 의식의 숨겨진 영역을 밝히고 예술과 문학에서 비합리적이고 몽환적이며 잠재의식을 탐구하려고 했습니다. 무의식과 정신분석 이론에 대한 초현실주의의 매력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에 역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꿈 분석과 자유 연상 그리고 상징 해석과 같은 프로이트 개념은 초현실주의 집단 내에서 공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인간 정신에 대한 더 넓은 이해에 기여하고 치료 관행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 당사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초현실주의자들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자신이 세운 이론과 개념을 잘못 해석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프로이트는 자동기술법을 조금 사용해 보긴 했지만 이내 이 방법에 회의감을 느끼고 상담 쪽으로 진로 방향을 틀었다고 합니다. 반면 동시대에 좀 더 젊은 세대였던 자크 라캉은 초현실주의자들과 절친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초현실주의는 종종 전쟁과 억압 그리고 불평등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사회 비판과 정치적 논평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현대 생활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사회 규범에 도전하며 현대 사회의 모순과 불의를 강조했습니다. 초현실주의가 예술을 비롯해 대중문화와 다양한 시각 예술등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고도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초현실주의가 사회와 문화 전반에 미치는 영향 또한 결코 적지 않음을 다시 한번 상기해 드리며 글을 마칩니다.